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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한국영화

버닝 (이창동)

by 휴먼계정 2018. 5. 26.


우선 벤이 살인자다 혹은 아니다같이 흑백으로 결말을 내는 것은 리틀 헝거의 삶이라고 생각된다.

그레이트 헝거와 삶의 의미라는 키워드를 노골적으로 반복하는 영화 치고 저런 결말들은 너무 쉬운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벤이 등장하고 해미가 사라지는 시점 즈음에서 관객은 두 가지 기로에 놓인다.

종수가 정신이 이상한건지 아니면 정말 벤이 살인자인건지 어느 쪽을 믿어야 할건지 선택을 해야 함.

그러나 영화는 계속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던져주고 있다.

말하자면 계속해서 관객들을 시험하는 셈.


판토마임과 고양이를 빌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해미와 종수의 대화

메타포라는 의미에 대한 설명을 종수에게 직접 해보라고 넘기는 벤

법을 우습게 아는 벤의 일련적인 행동

노가다로 비닐하우스를 계속 찾아 헤매는 종수

해미가 실종된 상황에서, 해미의 어머님과 언니에게 다른 것 말고 우물이야기부터 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종수

결국 해미의 방에서 해미와 같이 있다는 착각까지 하게 되는 종수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벤을 바라보는 종수

사람마다 없었는데, 있었는데 말이 다른 우물의 존재유무

하필이면 벤의 집에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고양이

종수의 집에서 발견한 해미의 것(으로 여겨지는) 시계

주차장에서 발견한 고양이를 보일이라고 불러보는 종수

현재 여친을 화장해주는 벤

종수가 벤을 살해하는 장소의 어색함. 한낱 대로변 바로 옆에서 살인 및 방화 저지름. 그 전에 목격까지 당함. 역시 비상식적.


등등의 관문을 거치며, 

무게중심을 옮기며 마지막까지도 결론을 내지 못한 관객도 있을 것이고

종수든 벤이든 어느 쪽이든 결론을 낸 관객들도 있을 것이고...


러닝타임 내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뭔가 곡성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곡성과 촬영감독님이 같은 분 이시길래 모르긴 몰라도 어느 정도 곡성의 느낌을 수렴을 한 것 같음.)

근데 곡성과 다른 점은, 우선 이 영화는 정해진 답을 추리하거나 하나의 답을 해석하라고 만든 영화는 아닌 듯 하다는 거.

그냥 관객 본인의 삶의 경험, 가치관 그리고 우선순위에 따라 믿고 싶은 방향대로 영화를 보게 된다는 생각이 듦.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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