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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학... 정말 재미있게 본 웹툰이라, 드라마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대했다.
솔직히 설령 드라마 퀄리티가 정말 낮더라도, 혹시 노잼이더라도
일단 그 스토리에 그 상황의 좀비들을 영상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몇번을 정주행할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눈살밖에 찌푸려지지 않는다.
이후의 혹평은 배우분들나 드라마 만드는 데 고생한 분들이 아닌 드라마의 방향을 정한 분들에게만 드리고 싶은 말이다.
좀비 얘기가 주된 얘기긴 하지만, 학교폭력이나 임대아파트 등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드라마가
과한 폭행과 쓸 데 없는 성폭행 장면을 전시하고 있다는 게 정말 모순적이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군데군데에 여러 함정이 있었다고 느꼈지만,
누구라도 동의할 만한 특급 문제는 바로 바로 성폭행 장면이라고 생각함.
이 드라마는 마니아층이 두터운 웹툰원작인데, 원작에선 저 장면들이 없었다. 도대체 왜 집어 넣은 거?
성폭행당하고 왕따당하던 약자가 슈퍼변종이 된다는 스토리까진 어떻게든 이해해준다 쳐도 굳이 폭행장면을 두고두고 재활용 안해도 충분히 스토리 소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화장실에서 출산하는 고등학생 캐릭의 등장도 갑작스러웠다.
다른 인물들과 관계가 있는 인물도 아니고 진짜 등장할 필요 자체가 없는 캐릭터였음.
심지어 아기가 등장 안했다면 cg도 필요 없었을거고 제작비 아꼈을 듯 하단 말이지. 왜 나왔을까?
아길 버렸다가 다시 데리고 도망가고, 그러다 감염되니 아기 보호차원에서 자신을 묶는 장면까지. 뭘 보여주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감염된건 출산과 유기에 대한 벌이고, 어쨌든 마지막에 보여준 모성애로 면죄부를 받았다는건지 뭔지?
아니니다를까 저 아기는 일면식도 없던 남성 경찰 캐릭터의 인류애 덕에 구원받음.
너무 뻔한 전개라, 이럴거면 아예 출생에 하나도 기여 안했지만 뒤늦게 후회하는 중인 아기 아빠 등장시켜서 구하게 하지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음.
그것도 아니면 저 경찰 캐릭터의 영웅서사를 위한 장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여성 캐릭터가 저렇게 소모되는 역사가 길었고 여전히 그러고 있기에 의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만?
여튼, 이유를 모르겠는 장면들을 제거할 순 없었을까
설마 좀비 하나만으로 스토리를 채우기 부족하니 이런저런 논란적 소재를 끼워넣은걸까?
드라마용 스토리의 개연성 혹은 새로운 서사를 위한 장치였다면 더욱 문제고,
저러한 현상들을 고발하거나 조명하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더더더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런 연출로 엔터테이닝적 요소를 충족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든 고발을 목적으로 했든... 어느 쪽이든 시청자들을 너무 우습게 본 듯 하다.
근 7-8년간 한국 인권감수성은 크게 발전했다. 시민의식도 정말 많이 성장했다.
1~2년도 아니고, 저 정도의 기간 동안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왔는데, 제작 과정에서 충분히 연출 방향을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작 과정에서 놓쳤더라도 모니터링 시사를 했을 텐데
거기서 지적받지 못했어도 문제고, 지적 받았지만 고치지 않았다면 더 문제고, 혹시나 고친 게 이 정도면 답없다.
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벌컥 뒤집힌지도 벌써 1여년이 지났는데 굳이 그 장면을 담다니.
심지어 저 사건 피해자들이 당했던 방식과 거의 일치하는 장면이 무려 1화에 나온다. 그리고 재탕된다.
묻고싶다. 이게 정말 맞나요?
말했듯, 고발목적이라면 한참 잘못됐다. 피해자를 전시하는 연출은 누군가에겐 2차 가해일 것이며, 사회적 병폐로 남을 뿐이다.
부산행을 언급하고,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제출하고, 얼굴인식비번 등을 반영하는 등의 변화는 눈에 띄었지만
인권적 감수성이 부족한 게 너무 아쉽다.
제작 소식 들릴 때 부터 기대했고 죽기 싫다는 카피도 진짜 찰떡이라 생각해서 정말 기대했다.
이상희, 김병철, 이규형, 박지후, 이유미 등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온 드라마라서 더 속상하다.
계속 비판 기사가 올라오던데, 부디 다른 연출제작진분들도 비슷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P.S.
다른 얘기지만, 솔직히 태종이방원에서 동물학대를 하게 된 것도
연출 주도권 쥔 사람들의 머리 속이 아직도 과거와 동기화 중이고
세상이 (드디어) 옳게 바뀌어 가는 걸 못 따라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줄뿐 아니라 전기충격기까지 썼다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사진출처: 넷플릭스